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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시장: 인간의 본능을 확장하다

디지털 자산 시장은 현재 주의력(Attention)에 기반한 경제 모델에서 확실성(Certainty)이라는 구체적인 가치에 기반한 경제 모델로 근본적인 구조적 전환을 겪고 있다. 지난 사이클 동안 크립토 네이티브 생태계는 현금 흐름이나 유틸리티가 아닌, 인터넷 대중의 집단적 시선을 포착하고 유지하는 능력에서 가치가 파생되는 '주의력 경제(Attention Economy)'가 지배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패러다임은 그 본질적인 휘발성으로 인해 한계에 봉착했으며, 자본은 이제 더욱 견고한 진실의 토대를 찾아 이동하고 있다.
1.1. 크립토 콘텐츠 시장의 구조적 한계와 피로감
Friend.tech의 등장과 Pump.fun과 같은 밈코인 런치패드의 급부상은 주의력 기반 모델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이들 프로토콜은 개인의 사회적 자본이나 바이럴 콘텐츠를 직접적으로 금융화하는 혁신적인 소유권 모델을 제시했다. Friend.tech의 '키(Key)'는 특정 인물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지분이었으며, 밈코인은 이미지나 농담의 바이럴 가능성에 베팅하는 원초적인 투기 상품이었다.
하지만 이 모델들은 근본적이고 극복 불가능한 한계에 직면했다. 바로 유동성이 오로지 인간의 변덕스러운 '주의력'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인터넷 문화의 초가속 주기 속에서 특정 내러티브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순간, 유동성은 순식간에 증발해버린다. 이는 필연적으로 "플레이어 대 플레이어(PvP)"의 제로섬 게임 환경을 조성했다. 후기 진입자는 필연적으로 손실을 떠안게 되며, 이익을 실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주의력이 소멸하기 전에 탈출하는 것뿐이었다.

Friend.tech의 몰락과 수많은 밈코인들의 급등락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극심한 피로감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피로감의 근원은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이다. 밈코인에는 펀더멘털을 측정할 기준이 없으며, 가격 자체가 콘텐츠이고 뉴스다. 결산 보고서도, 제품 출시도, 가치를 확정 짓는 최종 정산일(Settlement Date)도 존재하지 않는 이 시장에서 변동성은 유일한 상품이었다. 이러한 무한한 불확실성의 루프는 자본이 머물 수 있는 신뢰 가능한 토대를 제공하지 못했다.
1.2. 예측 시장의 부상: 뉴스가 가격을 결정하는 역전된 인과관계
2024년 미국 대선을 기점으로 예측 시장(Prediction Market)이 주류 데이터로 편입된 것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자본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밈코인과 예측 시장은 모두 인간의 도파민과 투기 심리를 자극한다는 표면적인 공통점이 있지만, 그 기저에 깔린 메커니즘은 정반대다.
밈코인 시장에서는 가격이 뉴스를 만들어내고 내러티브를 주도하는 순환적 구조를 가진다. 반면, 예측 시장에서는 외부의 뉴스(Fact)가 가격을 결정하는 선형적 구조를 가진다. 이것은 투기 금융의 인과관계가 역전되는 현상이다.
- 밈코인의 논리: 가격 상승->주의력 집중-> 신규 매수자 유입 ->가격 상승 (순환적, 자기 참조적)
- 예측 시장의 논리: 외부 이벤트(뉴스) 발생-> 확률 재평가->가격 조정-> 정산(Settlement) (선형적, 현실 참조적)
예측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자산에 '시작'과 '끝(Settlement)'이 명확히 존재한다는 점이다.4 "비트코인이 10만 달러에 도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계약은 사건이 발생하거나 만기일이 도래했을 때 반드시 $1.00(진실) 혹은 $0.00(거짓)이라는 최종 가치로 수렴한다.
이러한 이벤트의 확실성(Event Certainty)은 자본 배분자들에게 밈코인의 '더 바보 이론(Greater Fool Theory)'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리스크 프로필을 제공한다. 이것은 막연한 투기가 아니라, 무형의 리스크를 가격으로 환산(Pricing)하고 헤지(Hedge)하며 차익거래(Arbitrage)할 수 있는 금융 상품이다. 밈코인의 혼란스러운 정서적 변동성에서 벗어나, 예측 시장이 제공하는 명확한 결말과 정산의 구조로 자본이 이동하는 것은 혼돈(Chaos)에서 질서(Order)로, 막연한 기대에서 계산 가능한 확률로 자본의 선호가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크립토 섹터의 순환매가 아닌, 현실 세계의 불확실성을 금융화하려는 인류 본능의 구조적 진화이다.
2. 역사적 기원: 배팅과 헤지의 DNA
현대의 예측 시장, 특히 폴리마켓이나 칼시와 같은 플랫폼은 블록체인 시대의 발명품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인류 문명과 함께해 온 가장 오래된 금융 리스크 관리 도구의 최신 버전에 불과하다. 미래를 예측하고 그 불확실성에 가격을 매기려는 욕구는 인류의 역사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2.1. 16세기 교황 선출 베팅
뉴욕 증권거래소가 탄생하기 수세기 전, 로마의 은행가들은 이미 고도로 발달된 형태의 '이벤트 파생상품' 시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교황은 단순한 영적 지도자가 아니라 유럽의 전쟁, 무역로, 동맹 관계를 좌우하는 절대적인 세속 군주였다.

당시 상인들과 은행가들에게 교황의 선종(Sede Vacante)은 극심한 변동성과 리스크를 의미했다.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면 전임자의 채무가 무효화되거나, 특정 가문(메디치, 보르자 등)의 재산이 몰수되고, 지정학적 동맹이 뒤집히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따라서 특정 추기경의 당선 여부는 상인 가문의 생존이 걸린 문제였으며, 이들은 이러한 정치적 리스크를 헤지할 금융 상품이 절실히 필요했다.
로마의 금융 지구인 '반키(Banchi)'의 은행들은 추기경들의 당선 확률을 0에서 100까지의 가격으로 환산하여 거래했다. 이는 오늘날 예측 시장의 이진 옵션(Binary Option) 구조와 수학적으로 동일하다. '센살리(Sensali)'라 불리는 중개인들이 광장을 뛰어다니며 주문을 체결했고, 배당률은 실시간으로 변동했다.
이 시장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기반으로 작동했다. '아비지(Avvisi)'라 불리는 수기 뉴스레터는 바티칸 콘클라베의 담장 밖으로 새어 나오는 소문과 내부 정보를 실어 날랐다. 이 정보지들은 고가에 거래되었으며, 현대의 블룸버그 터미널처럼 정보의 속도와 접근성이 곧 금융적 우위(Alpha)로 직결되는 초기 형태를 보여주었다.
예측 시장에서의 내부자 거래 역시 16세기에 이미 존재했다. 1590년 콘클라베 당시, 몬탈토 추기경과 스포르차 추기경은 니콜로 스폰드라토(훗날 교황 그레고리오 14세)를 차기 교황으로 밀기로 비밀리에 합의했다. 그들은 이 합의 사실을 공표하기 전, 대리인들을 통해 스폰드라토의 승리에 막대한 베팅을 걸었다. 당시 10% 미만이었던 스폰드라토의 배당률은 이들이 지지를 선언하자마자 급등했고, 두 추기경과 그 측근들은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렸다. 이는 예측 시장이 단순한 도박판이 아니라, 정보와 권력을 가진 엘리트들이 미래의 결과를 선점하고 이익을 취하는 도구였음을 증명한다.
2.2. 17~18세기: 로이즈 커피하우스와 톤틴의 통계적 아비트라지
17세기와 18세기로 넘어오면서 예측 시장은 런던의 커피하우스와 제네바의 은행들 사이에서 더욱 정교한 통계적 차익거래의 형태로 진화했다.

런던의 에드워드 로이즈(Edward Lloyd)의 커피하우스는 단순한 사교장이 아닌 정보 거래소였다. 로이즈는 항구에 정보원(Runners)을 배치하여 선박의 귀환 소식을 일반 대중보다 먼저 입수했다. 이 '정보 시차(Information Latency)'를 이용하여 상인들은 특정 선박의 무사 귀환 여부에 대한 보험 계약(사실상의 예측 시장 계약)을 유리한 가격에 거래했다. 이는 정보의 속도가 곧 수익이라는 현대 고빈도 매매(HFT)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18세기 프랑스 왕실이 발행한 '톤틴(Tontine)' 연금은 통계적 아비트라지의 정수를 보여준다. 톤틴은 가입자들이 낸 자본을 모아 생존자들에게 이자를 지급하다가, 사망자가 발생하면 그 몫을 생존자들에게 재분배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보험계리적 지식이 부족하여 연령에 따른 사망률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모든 연령대에 동일한 수익률을 적용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제네바의 은행가들은 이 가격 책정의 오류(Mispricing)를 간파했다. 그들은 천연두를 이미 앓고 생존하여 면역을 가진 5~7세 소녀들(통계적으로 기대수명이 가장 긴 집단)의 명의로 대규모로 톤틴에 가입했다. 이 '불멸의 소녀들'을 이용한 신디케이트는 프랑스 왕실로부터 거의 영구적인 무위험 수익을 착취해냈다.8 이것은 현대 예측 시장에서 봇들이 확률적 오차를 찾아내어 수익을 올리는 '통계적 아비트라지(Statistical Arbitrage)'와 완벽하게 동일한 원리다.
2.3. 월스트리트 장외 시장과 1916년 대선 베팅
과학적 여론조사가 도입되기 전, 월스트리트의 장외 시장(Curb Market)은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가장 정확한 도구였다.
1916년 미국 대선 당시(우드로 윌슨 대 찰스 에반스 휴즈), 월스트리트 커브 마켓에서의 선거 베팅 규모는 뉴욕 증권거래소(NYSE)의 주식 및 채권 거래량을 능가할 정도로 거대했다.9 당시 트레이더들은 지역 간 정보 불균형을 이용한 차익거래를 수행했다. 공화당 강세 지역인 뉴욕에서는 휴즈 후보의 배당률이 높았고, 서부와 남부에서는 윌슨 후보가 우세했다. 기민한 트레이더들은 뉴욕에서 윌슨 티켓을 사고, 타지역에서 휴즈 티켓을 사서 양쪽의 가격 차이(Spread)를 취하는 지리적 아비트라지(Geographic Arbitrage)를 실행했다.9 이 시장은 1916년의 박빙 승부와 1936년 루즈벨트의 압승을 정확히 예측해내며, "돈이 걸린 예측"이 여론조사보다 정확하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입증했다.

3. 현대적 전략: 기술로 진화한 아비트라지(Arbitrage)
과거의 정보원과 파발마는 이제 21세기에 들어와 파이썬 스크립트, MEV 봇(Bot), 그리고 거대언어모델(LLM)로 대체되었다. 오늘날 폴리마켓과 같은 예측 시장은 단순한 베팅 장소가 아니라, 고도의 금융 공학적 전략이 난무하는 전쟁터다. 트레이더들은 더 이상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장 구조의 비효율성을 공략하여 수학적으로 확정된 수익을 추구한다.
3.1. 기계적 아비트라지 (Deterministic Arb)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강력한 전략은 확률의 기본 공리인 $P(Event) + P(\neg Event) = 1.0$이 깨지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 메커니즘: 이진 시장에서 YES 주식과 NO 주식의 가격 합은 이론적으로 항상 $1.00$이어야 한다. 그러나 시장의 급격한 변동이나 유동성 부족으로 인해 합계가 $1.00$ 미만으로 떨어지는 순간이 발생한다 (예: YES $0.60 + NO $0.35 = $0.95$).
- 실행 전략: 봇은 이 가격 괴리를 감지하는 즉시 양쪽 포지션을 동시에 매수한다. $0.95$를 지불하고 만기 시 $1.00$을 돌려받는 구조이므로, 결과와 상관없이 $0.05$의 무위험 차익을 얻는다.
- 사례 분석: 폴리마켓의 유명 트레이더 "distinct-baguette"는 이러한 기계적 차익거래의 대표적인 예다. 이 봇은 1~3초 단위로 시장을 스캔하며 합계가 99센트 미만인 기회를 포착한다. 인간이 반응할 수 없는 속도로 주문을 집행함으로써, 그는 약 1.5개월 만에 $242,000 이상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는 시장의 방향성을 맞추는 도박이 아니라, 시장 미세구조의 결함을 채굴하는 공학적 접근이다.
3.2. 통계적 아비트라지 (Statistical Arb)
더 진보된 전략은 상관관계가 높은 두 사건 사이의 가격 괴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 메커니즘: "트럼프 당선"과 "공화당 상원 장악"은 정치적으로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가진다. 만약 트럼프 당선 확률이 60%($0.60)에 거래되는데 공화당 상원 장악 확률이 50%($0.50)에 거래된다면, 역사적 데이터나 모델에 비해 스프레드가 과도하게 벌어진 것일 수 있다.
- 실행 전략: 트레이더는 저평가된 쪽(공화당 상원)을 매수하고 고평가된 쪽(트럼프)을 매도하거나, 스프레드가 축소되는 방향으로 포지션을 구축한다.
- 사례 분석: 트레이더 "sharky6999"는 이러한 통계적 괴리를 공략하여 15,000회 이상의 거래에서 99.5%라는 경이적인 승률을 기록했다.12 이러한 승률은 그가 불확실한 미래에 베팅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적으로 닫힌 차익거래 기회만을 선별적으로 실행했음을 시사한다. 그의 순수익은 $480,000를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예측 시장이 제공하는 상관관계 데이터의 비효율성을 증명하는 사례다.
3.3. AI 모델링과 정보 우위 (AI Probability)
가장 최전선의 전략은 AI를 활용하여 뉴스와 소셜 데이터를 인간보다 먼저 해석하고 가격에 반영하는 것이다.
- 메커니즘: LLM(거대언어모델) 기반의 에이전트는 뉴스 피드, 트위터, 온체인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특정 후보에게 치명적인 뉴스가 보도되면, AI는 텍스트의 감성(Sentiment)을 분석하여 가격 하락을 예측하고, 인간 트레이더가 헤드라인을 읽기도 전에 매도 주문을 낸다.
- 사례 분석: AI 봇 계정으로 알려진 "ilovecircle"은 뉴스, 온체인 데이터, 스마트 머니의 흐름을 분석하는 앙상블 모델을 사용하여 2개월 만에 $2.2 Million의 수익을 올렸다.14 74%라는 높은 적중률은 단순한 운이 아니라, '정보의 시차(Latency)'를 장악한 AI의 정보 우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로이즈 커피하우스의 '정보원'이 디지털 신경망으로 진화한 형태라 할 수 있다.
3.4. 스프레드 파밍과 카피 트레이딩
이 외에도 전통 금융 시장의 조성 전략이 그대로 차용되고 있다.
- 스프레드 파밍: "cry.eth2"와 같은 봇은 $0.49에 매수 주문을, $0.51에 매도 주문을 촘촘하게 배치하여 스프레드를 수취하는 마켓 메이킹 전략을 구사한다. 그는 100만 번 이상의 거래를 통해 $194,000의 수익을 올렸다.16
- 카피 트레이딩: 고래 트레이더의 지갑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복제한다. 이는 성공적인 전략이 시장에 빠르게 전파되어 알파(Alpha)가 소멸되는 속도를 가속화시킨다.
4. 미래 전망: 인프라의 진화와 확장
예측 시장은 이제 개인 간의 베팅을 넘어, 기관급 인프라와 결합하며 거대한 금융 레이어로 진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동화된 에이전트(Agentic Finance)'와 '큐레이션(Curation)' 모델이 핵심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4.1. 아비트라지 펀드와 자동화 프로토콜
일부 스타트업은 일반 투자자들도 손쉽게 예측시장 거래 전략을 자동화할 수 있는 툴을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향후 예측 시장만을 전문으로 하는 아비트라지 펀드의 등장도 기대된다.
예를 들어 자체 툴을 활용하여 Polymarket 시장에서 만기 직전 승률 99% 이상인 결과에 베팅해 이벤트당 1% 수익을 꾸준히 누적하는 봇도 등장했다. 또한 Opinion이라는 신생 예측 플랫폼의 오더북(order book) 기반 시장에 초기 유동성 공급자(LP)로 참여하여 스프레드 수익과 플랫폼 토큰 에어드랍 보상까지 얻는 자동화 봇도 이미 출시됐다. 이런 사례들이 상용화되면 예측 시장 분야에도 로우 리스크(low-risk) 전략의 헤지펀드가 등장하여 지속 가능한 수익률을 추구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궁극적인 비전은 '저위험 예측 시장 펀드'의 등장이다. 사용자가 자금을 예치하면, distinct-baguette와 유사한 알고리즘을 탑재한 에이전트 군단이 24시간 시장의 비효율성을 채굴하여 확정 수익(Yield)을 제공한다. 이는 예측 시장을 도박판에서 지속 가능한 수익을 창출하는 대체 투자 자산군(Alternative Asset Class)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
4.2. 큐레이티드 마켓과 오라클의 진화
탈중앙 예측 시장이 직면한 큰 과제 중 하나는 결과의 신뢰성과 책임 소재다. 앞서 언급한 Polymarket의 오라클 조작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 현재 구조에서는 잘못된 결과가 산출되어도 플랫폼이 사용자 피해를 보전해주지 않으며, 중앙 주체가 없기에 법적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 가지 아이디어로 “큐레이터(curator) 예측 시장” 개념을 생각해볼 수 있다.
큐레이터 기반 예측 시장이란, 각 개별 시장 이벤트마다 책임 질 수 있는 주체(큐레이터)가 존재하여 해당 시장의 신뢰성을 담보하는 모델이다. 큐레이터는 자신이 관리하는 예측 이벤트에 일정 보험금을 예치하고 초기 유동성을 공급한다. 만약 해당 시장에서 오라클 오류나 고의적 조작이 발생하면 이 보험금으로 사용자 피해를 보상해줄 수 있다. 반대로 아무 문제 없이 정상 종료되면 큐레이터는 시장 거래 수수료의 일부를 수입으로 가져간다. 큐레이터는 해당 이벤트의 IP 소유자이거나 결과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공인된 기관 등이 맡아서, 오라클 데이터 제공 및 최종 결정을 책임진다. 일종의 신뢰할 수 있는 중재자 겸 보험자가 끼는 구조로, 완전 탈중앙화의 이념에는 어긋날 수 있지만 실용적인 신뢰 보강 방안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포츠 경기 결과 예측시장이라면 리그 주최측이나 공인 기록기관이 큐레이터가 되어 잘못된 판정 시 보험으로 배상해주거나, 기업 실적 예측시장이라면 해당 기업이나 회계법인이 큐레이터로 참여하는 식이다. 큐레이터 제도가 정착되면 사용자들은 조작 위험을 덜 걱정하고 베팅에 참여할 수 있고, 큐레이터는 자신이 잘 아는 분야의 시장을 육성하여 명성과 수익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더 나아가 큐레이터가 활성화한 예측시장 위에는 2차 금융상품도 구축될 수 있다. 큐레이터가 제공하는 LP 토큰이나 레버리지 토큰, 영구선물(Perpetual) 형태의 파생상품을 만들어 거래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는 마치 한 시장 이벤트를 작은 기초자산처럼 만들어 그 위에 여러 층위의 파생 시장을 쌓는 모습인데, 이렇게 되면 시장의 깊이와 활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5. 결론: 무한한 TAM과 지식의 금융화
예측 시장의 총 잠재 시장 규모(TAM)를 단순히 2,000억 달러 규모의 스포츠 베팅 시장과 비교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이것은 카테고리의 오판이다.
예측 시장은 도박이 아니라 '이벤트 파생상품'이다. 주식 시장이 기업의 '가치(Value)'를 거래한다면, 예측 시장은 기업과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건(Event)'의 결과를 거래한다. "CEO가 해임될 것인가?", "규제 법안이 통과될 것인가?", "전쟁이 발발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들은 기존 금융 시장에서는 헤지하기 어려운 리스크였다.
예측 시장은 이 모든 불확실성을 거래 가능한 단위로 쪼개어 가격을 매긴다.따라서 예측 시장의 진정한 TAM은 스포츠 베팅 시장이 아니라, 1,000조 달러(Quadrillion) 규모에 달하는 글로벌 파생상품 시장에 비견되어야 한다.모든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불확실성이 파생상품화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주의력 경제'의 혼돈을 넘어 '확실성 경제'로 진입하고 있다. 16세기 교황 선출 베팅에서 시작된 인류의 본능은 이제 AI와 블록체인을 만나 전례 없는 정교함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예측 시장에 참여자들은 단순한 투기꾼이 아니라, 정보의 비효율성을 제거하며 거대한 진실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개척자들이다.
정보가 곧 돈이 되는 세상에서, 거짓 뉴스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 진실은 수익을 창출한다. 우리는 지금 미래의 진실을 가격으로 매기는 거대한 지식 그래프(Knowledge Graph)가 금융 시장의 새로운 기저 레이어로 자리 잡는 역사의 변곡점에 서 있다. 이것은 단순한 시장의 확장이 아니라, 인류가 정보를 처리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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